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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이/미국 생활-문화-정보

미국 공립 초등학교 (토끼옷코리끼) 교장선생님

제게 '교장선생님'은 근엄함과 비싼 자가용을 타시고, 1년에 몇 번 못 보는 높으신 선생님이 떠올라요. 무슨무슨 대표 상장을 받기 전까지 알현(?)하기 어려운 분이셨죠. (20세기 초등학교에서는요. 21세기는 초등학교는 좀 달라졌겠죠?)

 

권위를 말아드신 교장선생님

이곳은 대부분 등학교를 부모가 차로 해주거나 스쿨버스를 타요. 그래서 등하교 시간에는 학교 안이 차로 붐벼요. 거기에 늘 교통정리 하면서 아이 안전을 챙기시는 녹색어머니회 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계셔서 학교 직원인 줄 알았는데 그 분이 교장 선생님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죠! (오갈때 인사라도 제대로 할껄!)

 

1년에 2차례 선생님과 학부모가 만나는 컨퍼런스를 하는 날에 학교 가니 토끼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시는 분이 계셨어요. 처음에 세상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학교 이벤트로 파자마 데이였다는 거죠.

'애들만 하는 게 아니구나...대단하네, 선생님이 애들이랑 같이. 그런데 저 옷 입고 학부모 만나면 민망하지 않을까?'

애정어린 눈빛으로 토끼 옷입은 코끼리 같이 큰 선생님께 인사하니, 앗! 교통정리 하던 그 분!

 

권위를 말아드신 교장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근해서 좋긴 하지만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장 선생님의 중요한 일 중 하나인 훈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미국 교실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을 함부로 혼내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훌륭해서라기보다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훈육은 부모나 교장 선생님이 담당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시간이어서 이동해야 하는데 멜라니란 아이가 똘짓을 합니다. "나는 지금 교실에 있을꺼에요! 난 이거 하고 싶어요!"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타이르고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한 두번?) 멜라니는 선생님 말씀을 쌈싸먹고 바닥에 누워버립니다. 발버둥치며 "싫다고! 싫다고! 싫다고! 난 안할꺼야!!" 무한 반복 합니다. 음악 시간을 위해 이동하려는 다른 아이들은 얼어버리고 교실 분위기는 얼음장이 됩니다. 

상상만해도 화가 나는 이 상황에서,  선생님은  "멜라니!!" 하고 소리 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조용히 멜라니에게 교장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고 경고하거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조치를 취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절교육이나 기타 훈육은 담임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학부모나 교장 선생님이 하게 합니다.

 

몇 년 전에 미국 학교에서 교실 안에서 선생님께 반항하고 위협하는 아이를 선생님이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고 교사직 파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뉴스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선생님은 그 아이를 직접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교장선생님이나 학부모에게 조취를 맡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게 문제였던 것이지요.

 

아무튼 미국 영화에 나오는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학부모와 교장 선생님의 면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퇴학 당하는 위기에 있는 학생들만 교장을 만나는 게 아니라 우리 생각에 담임 선생님이 할 법한 다른 훈육을 교장이 직접 하기 때문에 일반학생들도 교장 선생님을 충분히 &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교장선생님의 권위가 학생들에게 통해서 교실에서 말썽 피는 멜라니에게 "다음에 이런 일을 하면 교장 선생님 만나게 될꺼야." 경고를 하면 왠만한 아이들은 긴장하며 행동을 똘짓을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도 교장 선생님을 만나다는 건 엄마아빠가 학교에 소환되는 것을 알고 불쾌한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큰 아이가 킨더 때-영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말 따라하며 분위기 살피며 말 배우는) 시기- 어린 아이가 갖는 토끼옷코끼리 교장 선생님의 권위를 느껴 적이 있습니다. 

 

You are Stupid!

어느 날 아이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집에 와서 무슨 일있었냐고 물었더니,

"엄마, 나 오늘 큰 일날뻔 했어. 교장 선생님 만날뻔 했다니까!"

 

학교에서 노는 시간에 친구 캐매론이 같이 놀던 제크에게 "You are stupid!"라고 말했대요. 제크는 꺄르르 웃으면서 뛰어갔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뭔가 좋은 말이다고 생각했대요. 친구가 친구를 웃게 만드는 말이니까요. 아들은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손 잡고 서있던 담임 선생님에게, 반 친구가 모두 있는 상황에서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You are stupid." 

........

.........

모두 갑분싸 되고 선생님은 표정이 굳어 버리고 아들은 순진하게 웃을 뿐이고.

다행히 아들의 평소 성품과 부족한 영어를 알았던 선생님이

"준아. 이거 어디서 배웠어?"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현상을 감지한 아들은 겁 먹은 눈을 껌뻑껌뻑.

"준아. 이거 안 좋은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쓰면 안 돼. 한번만 더 쓰면 교장 선생님 만나게 될꺼야."

선생님 말에 얼어서 고개를 끄덕끄덕.

..........

"제크가 웃어서 좋은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래."

한시름 놓은 아들이 귀엽기도 하고 영어가 짧은 아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져서 애잔했습니다. 어째튼 토끼옷코끼리 교장 선생님 만나는 걸 무서워 하는 걸 보면 교장 선생님에게 권위가 있긴 있나 봅니다. 

 

 

덧.

우리 학교는 킨더부터 5학년까지 840여명이 다니는, 미국 시골치곤 꽤 학생이 많은 큰 학교예요. 동양아이는 16%정도 되는데 한국 학생은 8명! ㅠ 한국말 할 수 있는 아이는 6명이에요. (그 중 3명이 우리집 아이들;;)

새학기 시작하는 9월 초에 교실 확인하러 갔다 교장선생님을 만났어요.

"오~앤쥔아, 하이준~, 여름 방학 잘 보냈니? 할머니는 잘 만났어? 헤이준은?"

막내 이름까지 모두 기억하며 안부와 여름방학에 어디를 갔는지 모두 아는 교장선생님 관심에 무척 감동되었어요. 대부분 우리가 서양사람 얼굴 구별 못 하듯(미쿡사람인지, 독일인 혹은 네덜란드인인지 잘 모르듯이) 서양사람들 또한 동양 사람들(한국 사람인지, 필리핀 사람인지!) 구별 잘 못하거든요.

840여명 넘는 학생들 중, 구별 못하는 동양인 학생을 애써 구별하며, 한국이름 발음이 안되어도 노력하며 불러주는 게 참 고마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권위는 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